입추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찌는 더위가 한창입니다. 이 무더위 속 님은 안녕하신가요? 곳곳에서 ‘입맛이 없다’부터 ‘단 음식이 자꾸만 당긴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같은 말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더워서 그렇습니다. 무엇도 먹고 싶지 않거나 무엇이든 먹고 싶거나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더워서 그래요. 그러니 쉬어야 합니다. 뜨거운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두세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긴 여름, 넉넉한 휴식으로 무탈하고 편안하길 바라요.

Gregory Rossetti

중세 음악은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하지만 몇 번을 들어도 어렵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건 (중세 음악 전공자가 아닌 이상) 서양음악사를 가르치는 음악학자도 마찬가지. 하지만 중세 시대는 대중 문화, 예컨대 영화나 게임에서 꽤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를 검과 마법, 기사와 성의 시대로 데려다주는 것은 단순히 눈에 띄는 비주얼이나 장대한 서사뿐만 아니라 이러한 세계에 중세의 감각을 불어넣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세 시대로 돌아가 현장 연구를 할 방법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보다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 롤플레잉 게임은 ‘중세의 소리’가 어떻게 음악으로 구현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무대입니다. Rachel Collyer의 연구는 다양한 연령, 성별, 음악 교육 및 게임 경험을 가진 110명의 게이머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온라인 설문을 실시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재구성된 중세 음악과 ‘중세적인 느낌’을 풍기는 음악에 대한 게이머의 반응은 어떤 차이를 보였을까요?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속 음악이 14세기에 실제로 울려 퍼진 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만족스럽다고 답했습니다. 음악 교육을 많이 받은 참가자일수록 음악에 대해 더 비판적이었지만, 이들 역시 게임 음악의 몰입감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게임 속 픽셀로 구현된 중세 시대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참가자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제작된 중세 소리환경을 받아들였고, 놀랍게도 역사적으로 정확한 음악적 재구성에 대해서는 선호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약하면 Collyer의 연구는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중세 시대와 연관된 문화적 관습에 대한 공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중세 음악의 강력한 매개로서 비디오 게임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러한 양식화된 경험이 역사적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합니다. 15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을 충실히 구현해 내려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Kingdom Come: Deliverance) 같은 게임이건 상상에 기반한 ‘중세풍’의 〈더 위쳐〉(The Witcher) 시리즈가 되었건 다음에 게임을 시작하고 배경 음악을 들을 때에는 역사, 음악, 상상력이 충돌하는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일독을 권합니다.

자, 이리 모여보세요. 재밌는 옛날 얘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지금의 네덜란드 남부 지방에는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라는 도시가 하나 있구요, 이 도시에는 성 요한 성당이 있어요. 그리고 이 성당에는 성 요한을 기념하는 예배가 일년에 5번 열리는데요, 그중 2번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예배래요. 성 요한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던 네 명의 제자(나머지는 마태, 마가, 누가) 중 한 사람이구요, 또 계시록(요한 계시록)을 쓴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기도 해요. 이 성당에서만 기념하는 2번의 예배는 성 요한이 파트모스섬으로 유배간 날을 기념하는 예배와 그 유배에서 풀려난 날을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성 요한은 바로 이 섬에서 은둔하며 계시록을 쓴 것으로 유명하죠. 아니,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바로 스헤르토헨보스의 성 요한 성당에서 기념하는 독특한 두 번의 예배에서 불리는 찬송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성 요한이 그 섬에서 계시를 받고 그것을 기록한 것 뿐만 아니라 왕성하게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했다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거죠. 성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서 은둔하며 계시만 기록한 것일까요 아니면 설교하며 바쁘게 돌아다닌 걸까요? 저자는 이 성당에 남아있는 찬송가를 기초로 라틴 문화 지역과 비잔틴 지역에서 각기 성 요한의 생애가 다르게 전해졌다는 점을 추적합니다. 신기하죠? 그저 한 지방 성당에서 전해 내려오는 노래에서 거대한 두 문화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노래가 비밀스런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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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Verbuč

Elizabeth Morgan

Nineteenth-Century Music Review의 이번 호는 “장기 19세기의 음악과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특집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파리의 시민들에게 어떤 집단적 ‘소리 상처’(sonic scar)를 남겼는지 살핀 연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트라우마 연구는 개인, 집단에게 정신적 내상을 남긴 사건들을 연구합니다. 특히 지난 세기의 홀로코스트,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번 세기의 911이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트라우마 연구가 중점적으로 다뤄온 사건이었죠. 논문의 저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트라우마 연구를 19세기 연구 속으로 가져옵니다. 먼저 19세기 후반의 파리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갈등과 전쟁, 죽음, 그리고 종국에 1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경험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트라우마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 가지는 의미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존의 트라우마 연구들에서 전쟁이 남긴 ‘폐허’와 같은 시각적 요소들이 주로 다뤄졌다면, 소리적 차원도 시각 못지않게 트라우마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전쟁의 소리를 어떻게 듣냐구요? 전쟁과 관련된 기록들, 문서들에는 소리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자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의 기록들(쓰여진 기억들)을 바탕으로 파리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죽음의 침묵이 감도는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추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