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이론연구, 38권
- Popular Music, Volume 41, Issue 2
- Music and the Moving Image, Volume 15, Issue 2
- Organised Sound, Volume 27,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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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S
제주 여행 5일 차.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식산봉이란 작은 오름에 올랐어요. 해안가를 따라 걷기 시작해 나무가 우거진 숲을 10분가량 오르다 보면 금방 꼭대기에 다다르는 소박한 오름이었어요. 용눈이오름, 새별오름처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은 아니었지만 바닷길과 숲길을 모두 품은 오름이라기에 마음이 끌렸어요. 게다가 아주 높지도 않아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어서 저에게 제격이었고요. 점심을 간단히 먹고 식산봉으로 향했어요.
해는 따듯하게 내리쬐고 바닷바람은 시원했어요. 기분 좋은 해안가 끝에서 숲길이 시작됐어요. 나무가 우거진 숲길은 해안 길과 달리 잘 정비되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거나 오르기 어려운 길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경사는 꽤 높아 금세 숨이 차올랐어요. 숨이 차기 시작하자 금방 어지러워지는 것도 같았고, 그러자 몇 해 전 제주 여행에서 잊을 수 없던 비자림 산책길이 다시 떠올랐어요.
Ⓒ 에디터 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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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이었어요. 무척 맑은 날이었고 햇볕도 뜨거웠어요. 그런 날 비자림에 갔어요. 날이 좋아 기분도 덩달아 좋았고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날 전 참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진 비자림 숲을 걷다가였어요. 기분 좋게 숲속에 들어섰고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촉촉한 흙을 밟으며 걷는데, 문득 답답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점점 걷다 보니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버리면서 그 나무들 안에 갇혀버린 듯한 기분이 든 것 같아요. 결국 전 숲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초입에서 돌아 나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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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비자림을 간 일은 없어요. 그렇지만 비단 비자림만이 저에게 문제가 됐던 건 아니에요. 이후 비슷한 숲길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재빨리 나와 버린 일이 또 있었거든요. 그땐 친구와 함께 여행하던 중이었는데, 저 때문에 여행을 망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번 식산봉에서도 그때의 그 어지럼증이 또 시작된 거예요. 벌써 세 번째. 이번엔 좀 버텨보기로 했어요.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건 아니니까 일단 더 걸어보자' 하는 마음으로요. 숲길이 문제가 아니라 숨이 차서 순간적으로 어지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속도를 조절하면서 차근차근 걸었어요. 그렇게 경사가 가파른 곳을 내내 걷다가 코너를 도니 양쪽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내려다보이는 평지길이 나왔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갑자기 나무가 무서웠어요. 이상한 말인데 정말 그랬어요. 나보다 키가 다섯 배, 아니 열 배쯤은 더 크고 둘레는 양손으로 감쌀 수 없을 만큼 드넓었어요. 그만큼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을 나무들의 유장한 세월이 느껴진 거예요. 그 우람한 모습 안에 깊이깊이 새겨진, 긴 기간 동안 축적된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 같았어요.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전 너무나 작고 왜소한 존재였어요.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그 짧은 순간에 전 나무가 품은 막강한 힘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리고 곧 나에겐 그럴 힘이 없다는 걸 알고 무서워진 거예요.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구간은 금방 끝이 났어요. 곧 정상에 다다랐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생각했어요. 비자림에서 느낀 그 답답함과 어지러움은 나무가 하늘을 가려서가 아니었어요. 저도 모르게 나무의 존재에 압도된 거예요. 또 저도 모르게 나무에 맞서고 싶어 했고, 동시에 좌절하고 있었어요. 두려웠어요. 이겨낼 자신이 없는 나무의 그 광대한 힘이 자꾸만 떠올라 결국 울고 말았어요.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지도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식산봉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산에 갔다가 오래된 절 앞에서 600년 된 나무를 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던 기억이었어요. 그 커다란 나무가 너무 멋져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아무래도 이건 찍으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카메라를 다시 넣었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그건 나쁜 기운도, 맞서 싸워야 하는 기운도 아니라고 다독이셨어요. 당신은 그날 그 나무를 보며 "당신의 세월을 인정해요" 하는 말을 맘속으로 건넸다고 하시면서요. 그저 "얼마나 힘들었어요? 참 잘 견뎌냈네요" 하고 인정해주면 그만이라고.
그 말을 들으니 모든 게 해결되는 기분이었어요. 나의 존재는 나의 존재 자체로, 나무의 세월과 그 존재는 또 그 자체로 인정하면 될 것을. 전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걸 같은 선상에 두고 애써 대결하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애써 그 대결에서 지고, 애써 두려워하고, 끝내 울고 만 거예요. 그 후로도 한동안 나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이미 오래 전부터 나무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그걸 이제야 구체적으로 깨닫게 된 것도 신기했어요. 왜인지 모르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슬프진 않았지만 한참을 울었어요.
Ⓒ Vitto Sommella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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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
바겐자일의 《건반악기를 위한 6개의 협주곡》 중 1악장 형식에 관한 연구
구조적 장치를 통해 형성되는 3도관계 조성구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Op. 106 《함머클라비어》를 중심으로
위반자로서의 유디트 다시 생각하기: 바르톡 《푸른 수염 공작의 성》(Duke Bluebeard's Castle) 비평
21세기 서양 작곡가들의 한국음악: 한국 시의 음악적 재현을 중심으로
C♯'s PICK
📌 이예지
위반자로서의 유디트 다시 생각하기:
바르톡 《푸른 수염 공작의 성》(Duke Bluebeard's Castle) 비평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 《푸른 수염 공작의 성》. 아마도 우리는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쓴 동명의 동화로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죽인 살인마에 관한 잔혹한 이야기이죠😱 약 70년 전에 음악학자 베레스Sándor Veress는 이 오페라의 서사구조를 '합리적 남성과 감정적 여성의 갈등구도 속 여성의 소멸'이라고 요약한 바 있어요. 이 논문의 저자는 전통적인 해석을 뒤집어보고자 시도합니다. 푸른 수염 공작이 아니라 여주인공 유디트Judith에 초점을 맞추어 비평하면서요😮 저자에 따르면, 원작 동화에서도 이미 관측되었지만 오페라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유디트는 위반하는 주체로서의 성격이 강화됩니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의 '위반' 개념을 빌려와 유디트를 남편인 푸른 수염의 금기를 적극적으로 어기고 일곱 개의 문에 다채롭게 대응하며 금기와의 관계를 재편해나가는 '적극적으로 위반하는 주체'로 상정한 거죠. 극적 서사에 대한 분석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논문의 사랑스러운🥰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요. 오페라에서 위반자 유디트는 조성관계와 음악적 진행, 음고류 공간과 리듬, 관현악 음향 등 음악적 요소를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어요🕵️ 이 논문에서 유디트는 남성 주체인 푸른 수염의 타자로 설정되는 대신 그녀의 정체성이 주체적으로 다루어지면서 진취적인 여성-위반자의 속성과 그 의미를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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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름을 클릭하면 '논문 전문'으로 연결됩니다
The Identitarian Movement and Fashwave Music: The Nostalgia and Anger of the New Far Right in Denmark
'We Come from the Underground': Grounding Chinese Punk in Beijing and Wuhan
Online Musicking for Humanity: The Role of Imagined Listening and the Moral Economies of Music Sharing on Social Media
A Place Outside the Pandemic? An Ethnographic Study of Live Music Events at St. Gallen's Cultural Venues Palace during the COVID-19 Crisis
The Production of Space and the Changing Character of the Recording Studio
C♯'s PICK
📌 Jelena Gligorijevic
A Place Outside the Pandemic?
An Ethnographic Study of Live Music Events at St Gallen's Cultural Venue Palace
During the COVID-19 Crisis
아, 코로나🤧 지난 2년간 예상치 못한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확 퍼졌어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공연계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들 중 하나죠💧 처음에 관계자들은 계획된 콘서트를 전면 취소했어요. 그러다 힘든 여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을 서서히 열어갔어요. 관객 없이 연행하며 이를 생중계하기도 했고, 비대면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하면서요. 그런 가운데 공연 현장의 개념뿐만 아니라 라이브 공연의 의미까지, 그간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상당 부분 뒤집혔습니다. 저자는 이 같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코로나 시기 라이브 공연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 인류학적 시선으로 살펴봅니다🕵️ 2020년에 수행한 현지 연구를 바탕 삼아 스위스 동부의 중심 도시 생갈렌St. Gallen에 있는 공연장 '팰리스'Palace의 면면을 탐구하죠. 경영, 기획, 청중 구성, 음악 미학적 경험 관련 이슈를 아우르면서요.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다가 새롭게 빚어지는 공연장의 소리 풍경, 그 역동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논문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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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y Huelin
Soundtracking the City Break: Library Music in Travel Television
C♯'s PICK
📌 Trevor Penoyer-Kulin
Narration, Voice, and Character in the Soundtrack to David Fincher's Gone Girl
가장 최근 본 영화를 떠올려 보세요🤔 인물, 줄거리, 장면까지 제법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반면 음악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아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음악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예컨대 국내외 동료 음악학자들 가운데 벨리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같은 아리아가 영화 〈베테랑〉의 그 유명한 장면('어이가 없네') 직후 사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물론 이는 좋은 현상입니다. 영화에서 음악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있는 듯 없는 듯, 감상자의 경험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게 '진짜'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음악이 이 미묘한 작업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영화음악학에서는 이를 어떻게 분석하는지 궁금하시다면 Trevor Penoyer-Kulin의 논문을 권합니다💁. 아, 그 전에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부터 보셔야겠네요. 음악이 인물과 심리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혹은 거꾸로 인물이 음악을 어떻게 '전용'하는지, 그래서 음악이 어떻게 내러티브의 일부로 기능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나저나 〈나를 찾아줘〉 보신 분들은 음악이 기억나시나요? 이번 기회에 영화를 다시 '들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 〈나를 찾아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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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RCIAL MUSIC AND THE ELECTRONIC MUSIC STUDIO
EDITORIAL
Editorial: Commercial Music and the Electronic Music Studio – Influence, Borrowings and Language
ARTICLE
Acid Patterns: How People are Sharing a Visual Notation System for the Roland TB-303 to Create and Recreate Acid House Music
Thirty Years of Sound Hacking: From Freeware to Eurorack
Tom Erbe Interviewed by Theodore Gordon
Lo-fi Today
A Sound Artist's Breakdown of Field Recording over History
The Modular Journey: Uncovering Analogue Aesthetics in Digital Landscapes
'We Cross Examine with Old Sonic DNA': King Britt and Tara Rodgers in Conversation on Blacktronika, Music Technology and Pedagogy
Pop Materialising: Layers and Topological Space in Digital Pop Music
Enactive Listening: Perceptual Reflections on Soundscape Composition
The Topological Model in the Works of Yuasa Jōji
Ecologies of Sound with Regard to Arrhythmia
C♯'s PICK
📌Ronald Boersen
Enactive Listening: Perceptual Reflections on Soundscape Composition
환경의 소리를 음악 창작에 녹여낸 사운드스케이프 작곡은 음향 생태학의 시작과 함께 생겨난 창작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적 듣기와 음악적 듣기가 기묘하게 결합된 사운드스케이프 작품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할까요? 또 일상적 청취의 특성이 사운드스케이프 작곡 과정에 어떤 정보와 영향을 주는 걸까요? 논문의 저자는 바로 이 문제에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청취가 우리의 지각, 특히 '행위기반 지각'enactive perception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듣기가 단지 소리만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중 감각이 작용하는 체화된 경험을 환기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지각이 외부 자극에 대한 수동적, 기계적 반응이 아니라 생명체로서 몸이 환경 안에서 취하는 역동적인 행위action의 결과 혹은 행위 그 자체라는 생태주의 심리학자 깁슨James J. Gibson 개념을 빌려옵니다. 그러면서 소리 환경에 실천적이고 행위적으로 연결되고 참여하는 청취의 특성을 분석해내죠. 결과적으로 전자음향 형태로 풀어낸 사운드스케이프 음악의 어쿠스마틱 소리 경험이 일상의 소리 환경 청취에서 환기하는 신체적 경험, 인지적 내러티브를 어떤 방식으로 모방하는지, 그것이 창작자의 작곡 프로세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밝힙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청취 행위가 창작 프로세스에 연결되는 방식이 궁금하다면 이 연구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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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phaël Feuillâtre – Couperin: V. Les barricades mysterieuses (Arr. Antoine Fougeray for Gui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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