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새해 첫날은 늘 설렜어요. 해가 바뀌면 어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니까요. 그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요. 떡국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다는 짓궂은 아빠 농담에 볼록해진 배를 부여잡고 떡국을 먹어 치운 기억도 나요. 이제 전 떡국 따위 먹지 않아도 팽팽한 피부는 흐물흐물해지고 부드러운 사고는 뻣뻣해진다는 사실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말괄량이 딸을 둔 그 시절 부모님보다 더 나이 든 어른이요. 어린 제게 어른은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바다만큼 넓고 하늘처럼 높던 엄마 아빠 같았을까요. 지금 저는 거기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요.

Inge van Rij

음악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그중에서도 20세기 이후의 음악사를 접해본 분이라면, ‘실용음악’으로 번역되는 ‘Gebrauchsmusik’이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1924-1963), 쿠르트 바일(Kurt Weill, 1900-1950), 한스 아이슬러(Hans Eisler, 1868-1962) 등 1920-3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활동했던 독일 작곡가들의 음악이 지향하는 바이자 미학적 슬로건입니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위한 모던 양식으로 된 수준 높은 음악’이 바로 그것이죠. 논문의 저자는 독일 음악학자 하인리히 베셀러(Heinrich Besseler, 1900-1969)의 주장에서 출발합니다. 베셀러는 실용음악 개념을 하이데거의 철학과 연결합니다. 음악에 즉각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요. 베셀러는 공식적인 문화와 제도를 거부했습니다. 청소년음악운동(Jugendmusikbewegung)을 장려하면서 일상적인 사회적 맥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제안한 겁니다. 반면 교육자였던 에리히 도플라인(Erich Doflein, 1900-1977)은 ‘연습음악’(Übungsmusik)이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베셀러의 생각을 교육학적 맥락과 결합하는 한편, 연주자가 작품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힌데미트의 작곡 전략이라고 해석합니다. 저자는 힌데미트의 음악작품과 ‘실용음악’ 개념을 각기 해석한 베셀러와 도플라인의 견해를 살펴보고, 음악적 지식과 행위를 통합시키는 데 중점을 둔 도플라인의 견해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는군요. 이 논문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음악을 넘어 우리 삶에 다양한 행위와 참여로 발생되는 ‘사건’으로서의 음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atelyn Clark

Anna Xambó Sedó, Gerard Roma, Thor Magnusson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때문에 시끄러운 2023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악보’로서의 코드를 강조하는 연주 기법인 라이브 코딩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이래로 크게 발전해 왔습니다. Organised Sound의 특집호 ‘Live Coding Sonic Creativities’는 이러한 진화를 조명하는 자리입니다. 특집호에는 14개의 논문과 서평이 실려 있으며, 라이브 코딩이 음향 예술, 소프트웨어 연구, 디지털 인문학에 미친 영향을 살펴봅니다. 주제는 사회문화적, 음악학적 분석부터 사운드 기반의 창의성, 다양성, 라이브 코딩 커뮤니티의 포용성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또 어떤 논문은 라이브 코딩의 인지적 측면, 라틴 아메리카의 탈식민주의적 관점, 다양한 글로벌 맥락에서 라이브 코딩의 실천에 대해 논의하고요. 라이브 코딩의 새로운 이론, 학제 간 관행 및 미래 가능성에 관한 연구도 있습니다. 마침 특집호에 게재된 논문 상당수가 오픈 액세스(Open Access)로 무료 제공됩니다. 음악학자들도 변화에 맞춰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없어 고민 중이셨나요? 음향적 창의성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운드 스케이프를 탐구하는 데 있어 라이브 코딩의 영향력이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 바로 접속해 보세요.

Leonard Martin

Douglas Rasmussen, Toward A Purple Aesthetic: Prince and the Creation of A Cultural Identity in Purple Rain

1980년대 팝 세상을 뒤흔든 스타 하면, 단연 마이클 잭슨, 마돈나, 그리고 프린스(Prince Rogers Nelson, 1958~2016)일 것입니다. 프린스는 1978년 데뷔 이후 정규 앨범을 39장 발매했고, 그래미 어워즈에서 7번 수상했습니다. 수많은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었고, 록부터 알앤비, 솔(soul), 펑크까지 여러 장르를 가로질렀지요. 앨범은 1억 장이 넘게 판매되었고요. 나아가 그는 소속사였던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예술적 자유를 부르짖으며 그 거대 기업에 강하게 맞섰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사에는 거침없이 성적인 내용을 담아냈습니다. 프린스, 그는 주류 팝계의 천재 음악인이자 유일무이한 이단아였습니다.

이 논문은 기념비적 앨범 ‘퍼플 레인’(Purple Rain/보라색 비, 1984)을 다룹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깃든 프린스의 젠더관(觀)을 엿봅니다. ‘퍼플 레인’은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 영화의 OST. 이 노작을 통해 프린스는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작품집 전반에는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는 프린스의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지는 그의 유연한 젠더관에 확실히 반영되어 있지요. 그 관점은 다름 아닌 남성성과 여성성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복합적인 젠더 의식을 말합니다. 오래된 젠더적 질서를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라고 할까요. 저자는 이러한 생각이 앨범이 나온 1980년대 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수용자에게도 와닿는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어쩌면 젠더적 경계를 가로지르려 하는 프린스의 의도는 대조적인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인 보랏빛, 그것을 내세우는 앨범에서 향기처럼 풍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