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죠. 12월에 들어서자마자 믿을 수 없이 추워졌어요. 이 추운 겨울 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 영화 보는 재미에 조금 빠졌어요. 지난 호에 〈세계의 주인〉에 관해 말하고 음악도 추천했는데, 구독자 한 분이 내용 스포당할까 봐 관련 글과 음악을 읽지도, 듣지도 못했대요. (훌쩍🥹) 스포 없이 딱! 추천만 할게요. 님, 〈국보〉 보세요. 어떤 영화냐구요? 스포니까 말할 수 없구요. 지난 일요일에 보고 왔는데 그날 잘 못 잤어요. 안 슬픈데 눈물나구요, 자꾸 생각나서 음악 찾아 듣는데 또 울어요. 

• 애플뮤직 없던 옛날, 교향곡 어떻게 들었을까
• 소리를 눈에 보이게 만들기
• 베베른 음악에서 미래 찾기 🤔
• 핵 실험은 멈췄는데 잔향은 왜 아직 남았는가

Notes from the Editor

The Twentieth Century and Beyond

David Manning

Vaughan Williams, Modernism, and Neo-Romanticism: Sancta Civitas as a Vision “Among the Ruins”

Ofer Gazit

Reclaiming Expressionism: Hindemith’s Operatic Triptych

📌 클레멘티가 편곡한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Jupiter’. © Mark Everist (Oxford University Press, 2023)

지금처럼 관현악단이 많지 않았던 시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어떻게 거실의 음악이 되었을까요? 에버리스트Mark Everist의 연구는 오늘날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 거장들의 교향곡과 협주곡이 19세기 초 영국에서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탐구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물었고, 대중들은 주로 편곡된 형태,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이른바 ‘JUPITER 앙상블 편곡’을 통해 이 작품들을 만났습니다. 이 독특한 이름은 모차르트 교향곡 41번이 바로 이 앙상블 편곡 악보에서 처음 ‘주피터’라는 별칭을 얻은 데서 유래합니다.

     에버리스트는 이 JUPITER 편곡이 단순한 대체물이 아니라 당대 음악문화의 핵심적 매개체였으며, 많은 청중에게는 사실상 ‘원본’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마치 원곡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당대 비평가의 평가를 인용하며, 오케스트라 원곡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이 편곡 악보가 원본의 지위를 대체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클레멘티, 크라머, 훔멜 등 유명 음악가들이 제작한 편곡들은 런던에서 출판되었지만, 실제로는 지방의 저택과 가정에서 활발히 연주되며 가정음악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에버리스트가 이 현상을 들뢰즈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e 이론과 연결 지으며, ‘원본’과 ‘복제(편곡)’ 사이의 고정된 위계에 도전하는 현대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음악 수용 방식과 정전 형성 과정에 대한 통념을 뒤집을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바로 일독을 권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요?” “베토벤의 음악 스타일은 모차르트의 스타일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 두 질문에 모두 사용된 ‘스타일’이라는 말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이 논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타일style’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추적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17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존 크리드John Creed라는 사람이 즉흥 연주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기계를 만들려 했습니다. 회전 실린더와 강철 펜으로 구성된 이 장치는, 피아노처럼 연주하면 그 움직임이 실린더 위에 선line으로 새겨지는 구조였죠. 대부분의 음악학자들은 이 기계를 “즉흥의 생생함을 기계로 옮기려다 실패한 발명”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크리드의 진짜 목적이 소리를 ‘표기’하는 것, 즉 소리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소리를 문자처럼, 선처럼 다루기 시작한 순간, 음악의 중심 개념이 새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쓰는 그 단어, ‘스타일’이라는 거죠. 18세기에는 ‘스타일’이 표현의 양식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라틴어 stilus(글을 쓰는 도구, 펜)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스타일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 방식이 아니라, 소리가 도구를 통해 선으로 그려지는 구체적인 행위였던 셈이죠. 결국 ‘스타일’이란 소리를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행위, 감정과 기술, 몸과 도구가 맞물려 생겨난 음향의 흔적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1962년 시애틀은 미래에 대한 열광으로 들끓었습니다. ‘센추리 21 엑스포지션’, 즉 ‘미국의 우주 시대 세계 박람회’가 도시를 뒤덮었고, 스페이스 니들과 모노레일은 유토피아의 상징으로 빛났습니다. 밀러David H. Miller의 논문은 바로 이 눈부신 미래의 현장에서 벌어진 매혹적인 문화적 충돌을 조명합니다. 박람회의 공식 행사로 제1회 국제 베베른 페스티벌이 개최되었고, 주최자 한스 몰덴하우어는 베베른을 “우주 시대의 음악가”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냉전 시대 기술 낙관주의와 예술적 모더니즘이 결합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우주 시대’의 음악이 아니라 잊힌 과거의 귀환이었습니다. 새롭게 발굴된 베베른의 초기 낭만주의 교향시 〈여름바람 속에서Im Sommerwind〉가 유진 오먼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세계 초연되었을 때, 관객이 마주한 것은 차가운 미래주의가 아닌 바그너, 슈트라우스, 말러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낭만주의의 세계였습니다. 이 논문은 이 예기치 못한 과거의 등장이 어떻게 베베른의 확고한 모더니스트 이미지를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낭만주의자 베베른’의 모습에 당황한 비평가와 학자들이 이 초기 작품들 속에서조차 필사적으로 ‘미래’, 즉 무조성을 향한 징후를 찾아내려 애쓰며 모더니즘의 역사를 소급적으로 재구성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합니다.

     밀러의 글은 단순히 한 음악 행사를 넘어 20세기 중반 미국 문화가 ‘미래’와 ‘진보’라는 개념 속에서 모더니즘 예술을 어떻게 소비하고 신화화했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과거의 발견이 그 신화를 어떻게 교란하고 재조정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미래에 대한 낙관이 최고조에 달했던 ‘우주 시대’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진 낭만주의의 메아리를 지금 바로 들어 보세요.

Jessica A. Schwartz, Attack and Decay: Resonances of Nuclear Militarization in the Pacific

태평양 한복판에 떠 있는 섬, 마셜 제도Marshall Islands라고 들어보셨나요? 이곳은 한때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악명 높았던 곳이에요. 이 글의 저자는 시적인 문체로 이렇게 묻습니다. “핵 실험의 진동이 멈췄는데, 왜 아직도 그 잔향은 남아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두 개의 노래를 대비시킵니다. 하나는 오래전, 이 섬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항해하며 불렀던 ‘카누의 노래’예요. 그 노래는 파도와 바람, 섬과 바다, 그리고 카누를 만든 나무에게까지 말을 걸며, 인간과 자연이 한 리듬으로 호흡하던 시절의 노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생태학적 노래라고 할까요? 또 다른 하나는 핵실험 이후 만들어진 ‘방사능 노래’인데요, 방사능이 파괴한 생태계와 침묵 당한 공동체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회복하려는 노래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주장하는 겁니다. 마셜 제도의 정체성은 바로 이 두 노래, 자연과 함께 노래하던 과거와 그 잔향을 붙잡는 현재의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요.